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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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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풍화(風化)


고립되어 있는 사람에게 생활이 있을 수 없다. 생활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연관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에 있어서의 생활이란 그저 시간의 경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물질의 운동양식이라면 나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바위처럼 풍화당하는 하나의 물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칭 옥살이라는 것은 대립과 투쟁, 억압과 반항이 가장 예리하게 표출되어 팽팽하게 긴장되고 있는 생활이다. 궁핍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또 요구를 낳으며 그 요구가 관철되기 위하여는 크고 작은 투쟁의 관문을 거쳐야 하는 판이다.
그런데 그 요구의 질과 양이 실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일광욕 투쟁, 용변 투쟁, 치료, 식수……. 바깥 세상에서는 관심 밖의 것들이 거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을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궁핍과 제한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이 생존에 불필요하기 때문은 아니다.
가장 불리하고 약한 입장에서 가장 필요불가결한 것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수인(囚人)들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다듬어진 용기와 인내와 지구력…… 이것이 곧 수인의 재산인 것이다.

 

일광욕 시간에 양지 쪽에서 푸른 하늘을 넋을 놓고 보다가 붉은 벽돌담 밑에 피어 있는 흰 꽃잎의 코스모스 한 송이를 따왔다. 줄기에, 씹던 껌을 붕대처럼 감아서 벽에다 붙여놓았다.
어둑한 옥방(獄房) 속에서 더욱 하얗게 피는 꽃. 그 꽃잎 옆 땀에 찌들은 판자 위에 새겨진 낙서들. '까까머리 내 청춘', '무죄', '파란 인생', '그리워 불러보는 이름이건만', '생각을 말자'…… 그리고 몇 년도의 몇 월치 달력인지 77개의 칸을 그어서 깨알같이 숫자를 적어놓았다.

 

불행은 대개 행복보다 오래 계속된다는 점에서 고통스러울 뿐이다. 행복도 불행만큼 오래 계속된다면 그것 역시 고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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